라오스의 여인들은 우리가 예전에 배틀를 짜서 모시옷을 해 입었듯이 같은 방법으로 직접
실로 천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여기 여인들이 입고 있는 전통복인 치마는 대부분이 배틀에 옷을 짜서 만든 것들이다. 방비엥에서
버스를 타고 비엔티엔으로 들어가던 길 중간쯤에 우리가 탄 버스가 고장이 났다. 버스 뒷부분에
있는 석유가 들어있는 연료통에서 기름이 새어나와 우리가 지나온 길엔 검은 석유가 길게 나있었다.
버스는 곧 이 동네의 가게와 집이 있는 곳에 멈췄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이 여인의 집앞의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라오스 사회는 우리나라의 옛날 제주도처럼 여자들이 일을해서 돈을 벌고 남자들은 거의 일을 하
지 않는 풍습이있다고한다. 남자는 할일없이 어슬렁거리며 놀고 먹는 게 일상이라는 라오스의 여성들은 자
연히 가정을 책임져야하니 일을 열심히 하며 생활력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이런식으로 고장이난다는 버스는 난감해하는 버스기사의 빠른 처치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오랜 시간
이 걸렸다.
우리에게 환한 미소로 맞아주던 이집은 가게가 있는 집이었다.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열어 놓은 문으로 안
을 훤히 들여보이는 집안을 잠간 볼 수 있겠느냐며 바디렌귀지로 의사소통을 했더니 이집 안주인인 듯한
아이의엄마는 큰눈을 반갑게 뜨며 환하게 웃었다.
라오스 여인들은 이 배틀로 꼬박 일주일을 매달려야 한개의 치마를 만들 수 있다고한다. 내가 허락을 받고
배틀앞에서 짜놓은 천은 없느냐며 물었더니 주인여자는 고운 연두색의 예쁜 무늬가 아랫쪽에 들어간 연두
빛 천을 하나 꺼내서 들고왔다. 얼마을 주면 팔겠느냐고 물었다. 미국돈 10달러 (한화 1만원)를 주면 팔겠
다며 우리 일행중에 동작이 빠른 여인이 얼릉 10불을 건냈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에 모두들 하나씩 사고 싶
다고 했더니 주인여자는 코발트빛이 나는 천을 하나 또 가지고 왔다. 그것도 눈깜박할 사이도 없이 순간에 돈
을 빨리 꺼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주일을 배틀에 매달려 짠 치마1개의 천이 우리돈 만원이었다. 노동
의 댓가로는 어리없는 금액이였다. 이렇게 인건비가 저렴하고 물가가 싼 나라였다.
콩크리트로 지은 2층집은 보기에도 단단해보였다. 우리의 70년대 수준의 양옥집의 형태인데 차들이 지나다니
는 길 앞쪽에 낡고 허름하고 뿌연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몇개 안되는 과자등이 있는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 뒷쪽 지대가 높은 곳에 분홍색의 예쁜 양옥집이 한채 더 있었는데 모두 한집꺼라며 민박도 하고 부유한
형편에 속하는 집인 듯했다. 일층은 그냥 시멘트 바닥에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벽쪽에는 우리나라 1960년대 이전에나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오래된 듯한 가구 장농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보니
우리나라 LGtv가 장농위에 있다. 낯설지 않은 나무의 색이며 모양에 아주 오래전에 친정어머님이 쓰셨던 장농색
같았다.
그리고 바닥에는 두깨가 꽤 있는 침대메트리스가 하나 덩그러니 창문아래에 깔려있었고 그옆으로 껍질이 벗겨진
낡은쇼파가 한개 건너편 창앞에는 여기 여성들의 가보이며 생계수단이기도한 배틀은 오색실들이 주렁주렁 매달
린 채 한곳에 놓여있었다.
이 집의 안주인과 아기
기다리는 동안 웃으면서 친절히 대해줬던 집 주인
안주인의 시누이
분홍색의 이쁜 콩크리트집 게스트하우스집 앞 마당에는 작은 턱밭과 라오스의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날샌 어미닭은 바쁘게 날아 다녔고.....
밖으로 나와 몇걸음 걸어 바로 옆집의 엄마와아이의 모습들도.....
잠시후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던 아이엄마가 배틀을 짜고 있었다 . 이리저리 다니는 내눈에 딱 걸렸다.
나를 의식한 듯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이다. 아마도 짜놓은 천이 있었을텐데,,,그 의미는
아니였는지 일해서 버는 것이니 가난한 살림에 도움이 되었는텐데, 내가 넘 정신이 없었는지 천을 묻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집은 부자인 옆집에 비하면 넘 가난한 살림살이이였는데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
을 몰라줬다는 생각이들었다. 있었으면 다 팔렸을텐데...혹시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정성들여 배들에 실을 꿰어 천을 짠다.
이집을 나오는 길에 문득 눈에 들어온 아이가 종이박스안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곳에선가 사진에서 봤던 모습이다.
이 모습도 이 순간에 느낌보다 지금 포스팅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든 사진이다.
이렇게 최하위의 빈민국은 가본적이 없어서 일까 금방 피부에 와 닿질 않았다. 한 며칠 더 이곳에 머물며 이들의 멈
춰진 시간속에 함깨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보지않아도 마음에 울림이 왔을텐데,,,지나가는 여행객의 마음이라지만
이 순간은 거의 무덤덤했었다.
이렇지만 이들에게 지금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않고 지금 여기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물질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생활에 익숙해져 살다온 난 진정한 삶의 행복은 뭔지 머리와 가슴이 따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좀 전에 작성한 글에 내 마음의 잣대로 감성에 젖어 짠하게 생각했던 것도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고장난 버스는 결국 우리의 다음일정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에 물품을 가지고 방문을 하는 일정
이였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관광객들이 방문을 하면서 물품을 가져다 주니까 아이들이 공부는 안하고
관광객이 오는 날만 기다려서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준다며 우리를 설득시켰다.
우리나라도 50년 전만해도 미국이나 유럽등지에서 빈민국인 나라에 보내오는 원조품으로 빵과 우유를 마셨
고 이쁜 옷도 얻어 입으며 살았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에 아쉬운 마음이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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