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부의 함부르크는 인구 174만명에 이르고 베를린에 이어서 두번째로 인국밀도가 많은 도
시로 무역경제의 중심도시로 세계 제2차대전 중에 일어난 화재는 이 도시의 50%를 폐허로 만들
었다.
중세의 건축물과 재건축으로 이뤄진 현대의 건축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유럽 최대의 항만시설
을 갖춘 항구도시로 조선업과 제조업등 경제규모가 괭장히 크다
이 항구를 통해서 무역뿐만이 아니라 교류도 세계를 향해 활발하게 이뤄지고있다.
Hamburg Elbe River
엘베 필하모닉 홀 (Elbe Philharmonic Hall)
함부르크의 문화와 예술의 전당인 엘베 필하모닉 홀은 2007년에 완공한 콘서트 홀로 창을 통해
보이는 엘베강가 유역의 항구 바로 앞에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에 구멍이 숭숭 뚫여있는 듯
한 그물 망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특히 독일 고전음악의 고장으로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등 크고 작은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대극장과 소극장이 많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는 고전음악의 작곡가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태어난 고향이다.
독일에서 유독 철학자가 많은 것은 일조량이 적고 어둡고 우울한 기후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독일 북부에 있는 함부르크는 브람스가 태어나서 거의 30년간이나 북독일의 기후와 자연환경의
기운을 받으면서 살았다. 브람스의 음악은 그가 나고 자란 함부르크의 기후와 무관하지 않다.
같은 고향인 멘델스존은 유태인 혈통이고 예술적 성향과 기질적인 면에서 함부르크는 어떤 영향
도 주지 못했다. 본거지나 주 활동 무대가 함부르크가 아닌 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였다,
그에게 함부르크는 태어난 곳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브람스는 다르다, 부모 모두 북독일 사람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수백년동안 혈연과 지연
에 얽혀 끈끈하게 인맥을 이여오는 전형적인 북독일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연관을 맺어왔다.
요즘 펼쳐보고 있는 최근에 나온 이성일 지음 "브람스 평전" 중에 나오는 글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 브람스의 생가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놓으면..
브람스가 태어난 함부르크의 슈페크스강 24번지의 집,전쟁때 폐허가 되서 지금은 없다
1903년에 영국의 피아니스트이며 한때 브람스에게 피아노를 배웠고,나중에 브람스 전기를 쓴
플로렌 메이 그녀의 브람스 생가를 방문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해 놓았다.
이 집은 중심가 부근에 있지 않고 작고 쓸쓸한 안뜰 뒤쪽에 있었다.
인접한 통로로 들어 가게 되어 있었고, 전에는 슬뤼터스호프라고 불렀다, 중앙의 경사가 급한
나무 계단은 안뜰에서 그 건물의 여러 층에 직접 올라 가도록 왼편, 오른편에 나 있었다.
브람스 가족은 건물 왼편 1층에 살았다. 그곳에 들어가면 당혹스럽고 놀라워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계단 문은 자그마한 공간으로 열려 있었는데, 절반을 부엌이고 절반은 홀이었다.
아마 조리를 하던, 그리고 아이의 침대가 놓였던 곳으로 보이고, 거기서 거실로 이르는 두 번째
문도 있다. 창문이 있는 침실 한 곳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지만, 너무 작아 방이
라고 볼 수 없는 공간이다.
함부르크 교회의 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엘베강가의 항구
브람스와 슈만의 첫 만남 중에서....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 슈만의 음악은 브람스가 오래전부터 그리던 상상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브람스는 자기가 좋아하는 문학과 그 세계관이 이미 슈만의 청년기 작품에 강렬하게
구현되어 있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1853년 9월30일 한낮 브람스는 동경하던 슈만이 부인 클라라와 그의 딸과 함깨 살고 있는 뒤셀브르크의 집으로 찾아가고.. 당시 43세의 슈만은 비록 브람
스가 한참 아래였지만 브람스를 대하는 슈만은 약간 떨고 있었다.
여전히 미소년의 섬세한 용모를 지닌 그의 얼굴에 묘한 수줍음이 교차했지만, 젊은 청년의 눈애는
어떤 불타오르는 정열 같은 것도 보였다.슈만은 그라프 피아노가 있는 좁은 거실로 브람스를 안내했 다.그렇게 어색한 첫 만남의 순간이 지나간 뒤,슈만은 브람스에게 피아노를 한번 연주해 보겠느냐고 했다.
브람스는 피아노 의자에 앉자마자 갑자기 매우 인상적인 음악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피아노 소나타 C장조"였다. 그것은 확실히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하머클라
비어 소나타를 연상시키더니 조가 바뀐 다음부터는 발트슈타인 소나타 같은 음향으로 치달았다.
슈만은 이 청년의 작품이 베토벤의 어떤 중요한 정시적 모습과 매우 닮았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 다. 슈만은 이런 음악이야말로 앞으로 독일 음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다. 슈만은 점점 흥분했다. 양미간을 찌푸리며 환한 얼굴로 신나게 건반을 두드리던 브람스는 연
주를 중단해야 했다.
슈만이 연주를 막았기 때문이다. " 아 잠깐만 아내를 불러야겠어." 이 경이로운 순간을 혼자 목격하고
있을 수없다는 뜻이었다. 브람스는 잠시 건반을 내려다 보고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슈만은 클라라를 찾아 데려오기 위해 급히 거실을 빠져나갔다.
슈만은 그의 일기장에 "브람스,천재가 방문했다.고 썼고, 클라라도 그날 브람스에 관한 인상을 일기
에 " 이곳에 다시 신이 내려보낸 것 같은 사람이 와 있다! 라고 남겼다.
.........세기의 만남, 슈만과 그의 아내인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이여지지만 여기까지만......
이 성일선생님의 브람스 평전을 주문해 놓고 도착한 책의 두깨를 보고 p750 ...세상에나 과연 이 책 을 최근들어서 더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한 내가 다 필독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책에 묘사된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넉넉지않은 환경 고뇌의 삶속에서 열정적으로 피워낸 음악
예술을 향한 꿈들이 절절히 눈앞에 떠오르는 듯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지에서 깨어나 알아가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감사하다.
중간에 손을 놓아서 아직도 반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무덥고 지리한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완독을 하면 좋겠다.
여기서 출항하는 배는 활짝 열린 바닷길을 따라서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교회의 탑 전망대
함부르크에는 세계제2차 대전중에 도시의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가 되었다고, 그런데도
지금까지 운좋게도 오래된 교회 몇곳이 그대로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머문다.
벌써 1년전이었고, 지금 이 교회의 이름은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여행을 하신 분들이
많으시니 아실만한 곳이라 생각하고...
전망대는 이 교회의 1층 안내데스크 창구에서 티켓을 끊고 철재로 된 나사모양의 회오리 계단을
딛고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성인 몇사람이 겨우 어깨를 부딫치면서 서있어야 할 좁은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 본 엄청난 스케일의 컨테이너 항만시설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엘베강이 흐르고 함부르크 항구를 오가는 크루즈 선과 유람선들의 모습들
비교적 넓게 볼 수가 있다.
이 레스토랑이 있는 부근의 모습은 17~19세기에 건축된 마치 암스텔담의 시청부근의 모습을 보는 듯한.
붉은 벽돌로 정교하고 반듯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들이 숨막힐 듯 밀집된 지역으로 인상적인 풍경이다.
이날 점심으로 라자냐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100년이 넘은 창고를 개조한 레스토랑의 외관의
풍경 이 레스토랑의 실내의 모습은 전에 포스팅을 했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